모터사이클/DH-88

올드바이크의 참 맛! 여유롭게 천천히 달려야 하는 것, DH88 2,000km 시승기, 언더본

라운그니 2016. 7. 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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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녀석을 부모님댁으로 가져와 출퇴근 위주에서 동네, 시내용으로 사용중이다.

평균속도는 20~40km/h 이내. 


누군가 그랬다. 

배기량이 낮은 바이크는 먼 거리용으로 사용하기보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때나 어울린다고.

또, 그렇게 해줘야 더 오랜시간 제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천천히 타면 바이크의 컨디션을 좋은쪽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건 동의하지만

오로지 단거리로 사용한다면 녀석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또 신나게 달려야하는 숙명을 지닌 녀석에게 미안한게 아니던가.







하지만, 요즘 그 말이 이해되는 것 같다.

최근 약 5km 이내 거리를, 20~30km/h 속도로 주행하면서 또 다른 녀석을 느끼고 있다.


천천히 달리니 주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공기나 바람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마음에 여유가 더 생겼다고 할까. 







난 그동안 녀석을 6개월간 출퇴근 용도로 평균 속도 60km/h, 2,000km 거리를 넘게 사용하면서 

오래된 바이크지만 완벽한 기계로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녀석을 더 가혹한 조건에서 성능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그것만 생각했던 거 같다.

속도에 목마른 건 아니지만 최고속이 어떨지 또 얼마나 오래달릴지 그것만 머리속에 있었던 거 같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아낀다는 그 모토가 진심이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느 물건이나 다 적절한 용도가 있듯이 녀석의 경우 

도심에서 혹은 시골에서 유유자적 털털하게 천천히 타는게 어울리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또 그렇게 타니 녀석에게 더 애착이 가고 만족스럽다.








올드바이크매니아 터래기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88은 조용히 천천히 타고 다니는게 제맛인데, 큰 소리나는 머플러로 바꾼다구요?"


"네, 선생님. 아무래도 소리가 커야 주변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88은 조용히 타야 참 맛을 알 수 있어요" 


당시 그 말이 이해가 안갔지만, 지금은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나와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며 천천히 달리는 것! 

그래야 녀석의 참 맛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오로지 성능, 최고속만으로 바이크를 판단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은 감성으로 탄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그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같은 곳을 보고 느끼며 

그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DH88은 아니 올드바이크는 그런게 아닐까. 

그것이 진정 녀석에게서 느끼는 참 맛이 아닐까.






#2.



녀석과 함께 한지 9개월째. 

현재 녀석의 누적 마일리지는 16,700km. 







26년. 

녀석의 시간에서 내가 차지하는 시간은 고작 1년?







그동안 녀석은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까. 어떤 주인들을 만나고 어떻게 지내왔을까. 

혹 내가 좋은 주인이었을까. 앞으로 녀석을 더 오래 책임질 수 있을까.








애착이 더 가는 건 맞지만... 잘 모르겠다.












#3. 



최근 부모님댁에서 녀석을 이렇게 써먹고 있다.

가까운 슈퍼에 들려 과자를 한가득(?)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설렁설렁 다닌다.

거기다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말이다.

아마 주위에서 보면 저런 한량도 없을 것이다 생각할 것이다.







흐흐...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녀석과 딱 어울릴 것 같다.

그 오랜시간동안 고생도 많이 했으니 앞으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낫겠다 싶다.







도심에서나 이런 시골길에서나 잘 어울리는 녀석.

그만큼 DH88은 존재감이 강한 녀석이다.

뭐 그것도 올드바이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한정되겠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난 이 녀석이 좋다. 아니 더 좋아질 것 만 같다. 


왜냐구?


이제 녀석의 참 맛을 알기 시작했으니까. 





끝.


추신) 그동안 고생해준 DH88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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