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ⅰ/기타

전통시장을 찾아서 '동대문 평화시장의 역사'

라운그니 2012. 3. 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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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시장

동대문 상권은 짧게 봐도 약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1905년 대한제국 한성부의 개설허가를 받아 만들어진 최초의 근대시장인 광장시장이 모태인데요. 한국전쟁 뒤 월남한 실향민들이 청계천 5가, 6가 주변에 노점을 차리고 전쟁 구호물자를 팔았다고 합니다.

1958년 큰 화제 뒤 그 자리에 선것이 지금의 평화시장인데요. 나일론 같은 화학섬유가 생산되면서 평화시장에는 조그만 공장들이 들어섰고, 청계천 6가 ~ 8가 도로변을 따라 신평화시장, 청평화시장, 동평화시장, 남평화시장 등이 들어서게 되었답니다. 신평화시장 뒤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쪽의 흥인시장, 덕운시장, 광희시장, 서울운동장, 평화시장, 제일평화시장, 광희플라자, 동평화시장 뒷편 아트플라자도 모두 평화시장에 속하죠.




통트는 새벽시장

평화시장은 원래 도매 시장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아닌 소매상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데요. 의류소매상들이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물건을 구매하여 다음 날 자신의 가게에 진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야간에 영업을 해왔죠. 지방의 의류 소매상들은 공동으로 봉고차 등을 이용하거나 새벽버스를 이용해서 평화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왔습니다.

1962년 오늘날 건물과 유사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으나 인근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 있어 여기로부터 유입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내 수공업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영세 업체들을 지탱시켰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전태일이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죠.


EBS 지식채널에서 방송된 '평화시장 재단사' 를 감상해 보도록 하죠.

 
전태일의 죽음으로 노동자들의 의식이 깨어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태일을 기리기 위해 청계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10월 전태일 거리가 조성되었죠.



고층 의류전문상가속의 전통 의류 도매상가

최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의 고층 의류 전문 상가건물이 동대문 근처에 들어서게 되었죠. 이러한 상가들을 통틀어 동대문상가라고 부르는데, 평화시장은 동대문상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자촌에서 시작한 평화시장이 모태가 되어 지금은 고층 의류전문 상가건물을 포함한 동대문 상가로의 발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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