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니 뭐니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소식을 접하고, 회사에서는 자동화 워크 플로우 등 정합으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기술이 줄 수 없는 따뜻함이나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침 그런 마음을 채워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바로 이소이 요시미쓰가 쓰고 홍성민이 옮긴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지 않나?
"책"보다 "사람"이 주인공인 도서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 그 사이 책상에 앉아 조용히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들. 뭔가 엄숙하고 조용한 공간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가진 그런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저자인 이소이 요시미쓰 씨는 '동네도서관 운동'으로 일본 전역에 희망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분이다. 그가 시작한 동네도서관은 처음 오사카의 11평짜리 작은 사무실에서 1,500권의 장서로 시작했지만, 7년 만에 일본 전역에 120여 개로 확산되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규모를 키우지 않고 여전히 10평 안팎의 작은 공간들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집, 카페, 가게, 병원, 심지어 절 같은 일상의 모든 공간이 도서관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장서 0권"에서 출발한 도서관이라는 개념이다. 책 한 권 없이 시작하지만, 사람들이 직접 자신이 아끼는 책,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장서를 채워간다는 것이다. 이소이 씨 방식 동네도서관의 핵심은 주인공이 "책"이 아니라 "사람" 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보고 읽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고 대화가 움트는 공간, 즉 사랑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하지만, 책보다 중시하는 것은 사람이다. 비록 책이 없더라도 각자 관심 있는 책을 가져와 생각을 나누는 모임만으로도 충분히 도서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네도서관이 꿈꾸는 '배움'과 '관계'
저자는 동네도서관이 지향하는 것은 '배움'이라고 강조한다. 책을 매개로 하면 지위나 입장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배움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지속 가능한 배움을 나누는 일,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눌 수 있는 배움의 인연인 새로운 '학연'을 만드는 것이 동네도서관의 꿈이며 역할이라고 한다. 이런 동네도서관은 주민운동과 도서관 운동이 창조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아지트, 사랑방이 되어 죽은 마을을 살려내는 공동체의 핵심 공간으로 진화해간다.
작은 실천이 만드는 기적들
책에서는 평범한 개인들이 동네도서관을 통해 만들어가는 놀랍고도 따뜻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도쿄의 한 절은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 주민들에게 절을 개방해 동네도서관을 운영하며, 신자들이 가져온 책과 스님의 작은 강좌가 열리는 도심 속 힐링 공간이 되었다.
- 고베시의 오카모토 상가에서는 22개 점포가 각자 어울리는 주제로 책을 모아 상가 전체가 하나의 도서관 기능을 하는 사례도 있다.
- 나라 현에서는 70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내가 남긴 책으로 '하루에 문고'라는 동네도서관을 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 치과 병원 일부 공간을 도서관으로 개조해 주민들 간 교류와 소통의 장으로 만든 이야기.
-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산을 개간하고 숲을 만들어 '숲 도서관'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동네도서관이 사람의 힘을 믿고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활동임을 보여준다. 지역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주민들의 힘과 땀, 열정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며, 동네도서관은 이런 지역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치 잘 익은 술처럼 발효할 시간이 필요하고, 저절로 이웃으로 퍼져나가고 전파되는 선순환 속에서 지역 전체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이다.
나만의 '동네도서관'을 상상하며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뜨끔했다. 지식과 정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러야 더 풍성해지고 재창조된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동네도서관은 마냥 공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단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고 등을 밀어준다고 응원한다.
이 책은 '소그룹', '과정과 참여', '개인의 열정', '사람 중심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우리 삶의 중심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혹시 당신의 집 거실 한쪽, 혹은 자주 가는 동네 가게 한 켠이 작은 동네도서관으로 변신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을 읽다 보면 분명 그런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아주 작게라도 시작해 볼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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